77세 아버님인데요. 몸 상태에 너무 예민하세요. (노원구 70대 후반/남 질병불안장애)
저희 아버님이 은행장까지 하시고 은퇴생활을 하고 계신데요. 원래도 꼼꼼하고 예민하신데, 5년 전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뒤로 몸 상태에 대해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세요. 단순하게는 소화가 안 되는 것부터 위암 아니냐, 허리가 좀 아프면 디스크 아니냐, 머리가 아프면 뇌졸중 아니냐 등등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시고 병원 가서 검사를 꼭 받아야 하세요. 요즘은 걸을 때 왼쪽 발목이 아프다며 골절 아니냐면서 정형외과에서는 괜찮다고 해도 꼭 X ray 검사를 받고야 마셨어요. 이런 일로 새벽에도 문자에 전화에 자식들도 스트레스받는 사정입니다. 왜 그러신걸까요?
안녕하세요, 닥톡-네이버 지식iN 상담한의사 김헌입니다.
아버님의 증상은 의학적으로 '질병불안장애(과거의 건강염려증)' 또는 '신체증상장애'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보입니다. 은행장까지 지내실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고 꼼꼼하셨던 성격과 어머니의 사별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님이 겪으신 배우자의 죽음은 스트레스 지수 100점으로, 인간이 겪는 생애 사건 중 가장 큰 스트레스입니다. 또한 은퇴(45점) 역시 생활 주기상의 중대한 변화이자 위기로 작용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외로움 그 자체는 강력한 스트레스원이며, 이는 신체의 면역 체계와 스트레스 조절 능력을 약화시킵니다. 특히 사별 후 애도 기간 동안 죽은 이의 병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아버님처럼 예민한 분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소한 신체 감각(소화 불량, 가벼운 근육통)을 비현실적으로 부정확하게 인식하여 심각한 병의 증상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허리가 아프면 디스크", "머리가 아프면 뇌졸중" 식으로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파국화' 사고에 빠져 계신 상태입니다. 이러한 인지적 왜곡은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고, 다시 신체 증상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내면의 슬픔, 불안, 외로움 같은 감정을 말로 적절히 표현하거나 해소하지 못할 때, 우리 뇌는 이를 신체적인 통증이나 질병으로 대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를 '신체화'라고 하며, 아버님에게는 병원 검사와 자식들의 관심이 자신의 불안을 달래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병원을 계속 찾고 검사를 고집하는 것은 일시적인 안심을 얻기 위한 반복적 행동입니다. 하지만 의사의 "괜찮다"라는 설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며, 아버님은 의사가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느껴 또 다른 검사를 요구하게 됩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뇌의 '화재경보기'인 편도체를 과잉 흥분시키고, 이를 조절해야 할 '감시탑'인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약화시킵니다. 이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불안에 압도된 정서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님이 호소하시는 통증은 꾀병이 아니라, 뇌와 자율신경계가 반응하는 실제적인 고통임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 대화의 시작입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닥터 쇼핑'은 오히려 합병증을 유발하거나 불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의사 한 명에게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으며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과 사회적 지지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게 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아버님이 삶의 목적의식을 다시 찾고 소소한 활동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뇌의 회복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버님의 행동은 자식들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불안을 몸으로 표현하고 계신 신호로 이해해 주시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망문문절(望聞問切) 사진법(四診法)으로 환자의 장부기혈(臟腑氣血) 상태를 파악하여, 신체 균형을 잡고 체질을 개선하는 한약 및 침구 치료를 시행하는데요. 아버님의 증상 또한 한의학적 접근을 통해 도움드릴 수 있으니, 주저하지 마시고 가까운 한의원 내원하셔서 적절한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