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눈물만 나고 아기가 예뻐보이지 않아요, 산후우울증인가요? (파주 30대 중반/여 산후우울증)
출산한 지 두 달 된 초보 엄마입니다.
아이는 너무 소중하지만 온종일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만 흐릅니다.
이유 없이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자책하게 되는데 이것도 치료가 필요할까요?
안녕하세요, 닥톡-네이버 지식iN 상담한의사 유시연입니다.
보내주신 글을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아야 할 출산이라는
큰 고개를 넘은 후 찾아온 마음의 그늘 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내고 계실지 감히 헤아려봅니다.
새 생명을 품고 세상에 내놓기까지 이미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상태에서,
쉴 틈도 없이 이어지는 육아와 수면 부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지치고 상하셨을지 그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마음이 참 먹먹합니다.
아기가 온전히 예뻐 보이지 않고 자꾸만 눈물이 흐를 때,
'내가 좋은 엄마가 맞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홀로 밤을 지새우셨을 모습에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금 느끼시는 그 막막함과 무기력함은 결코 어머니의 모성이 부족해서도,
의지가 약해서도 아닌, 출산이라는 거대한 변화 이후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완전히 고갈되어 보내는 간절한 신호일 뿐입니다.
스스로를 향한 미안함과 자책의 시선을 잠시 거두고, 지친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건네야 할 때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처럼 출산 후 마음이 울적해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는
산후우울의 상태를 '완혈모상(完血耗傷)'과 '심담구겁(心膽驅怯)'의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돌아가며 따뜻한 온기와 빛을 밝히는
'등불'과 이를 채우는 '기름'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열 달 동안 태아를 키우고 출산하는 과정은 여성이 평생 쓸 수 있는
정혈(기름)을 한꺼번에 가장 많이 소모하는 대단히 큰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근본적인 연료인 기와 혈이 한순간에 바닥을 드러내게 되는데,
기름이 부족해진 등불이 가냘프게 흔들리듯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장부인 심장과 담도 기능이 함께 지치고 약해지게 됩니다.
이렇게 심담구겁의 상태가 되면 외부의 작은 자극이나 아기의 울음소리에도
마음의 방어벽이 쉽게 무너져 내리고, 가슴이 조여들며 이유 없는 슬픔과 불안감이 해일처럼 밀려오게 됩니다.
또한 신체적으로 기혈이 순환되지 못하고 정체되면 감정의 소통 통로가 막혀
작은 일에도 날카롭게 짜증이 나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정서적 기복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억지로 힘을 내어 훌륭한 엄마가 되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부족해진 신체적 에너지를 보충하고
막힌 기운을 부드럽게 소통시켜 주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한방신경정신과에서는 산모 개개인의 체질적 특성과 출산 후 기혈의 성쇠,
그리고 자율신경계의 균형 상태를 면밀히 살펴 마음의 병을 유발한
근본적인 신체적 원인을 찾아가는 데 집중합니다.
바닥난 정혈을 정교하게 채워 전신과 뇌로 가는 기운을 보완하고,
약해진 심장과 담도의 기능을 강화하여 스스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탄력성을 서서히 회복하도록 돕는 한의학적 조절이 이루어집니다.
이와 함께 가정 내에서도 아주 작은 일상의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긍정적인 자극이 됩니다.
아이가 잠든 아주 짧은 시간만이라도 육아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오
롯이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거창한 운동 대신 거실을 가볍게 걸으며 굳어진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정체된 기운을 돌리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또한,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현재의 힘든 감정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대화로 표현하여 마음속에
고여 있는 울화와 슬픔을 밖으로 환기시키는 연습을 하는 것도 마음의 압박감을 줄이는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은 비록 사방이 꽉 막힌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아기를 안고 우는 것처럼 외롭고
막막하게 느껴지시겠지만,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지듯
이 어둠 또한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현재 느끼는 정서적 고통과
신체적 피로를 혼자만의 책임으로 안고 가기보다는,
마음의 결을 세심하게 살피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조언과 체계적인 소통을 구해보는 것이 지혜로운 길입니다.
모쪼록 오늘은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은 잠시 내려놓으시고,
생명을 세상에 전하느라 고생한 소중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무거운 그늘이 걷히고 다시 아이를 보며 편안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평온한 일상을 되찾으시는 그날까지, 가정 내에서 편안하게 치유해 나가시기를 진심을 다해 묵묵히 응원하겠습니다.
작성해 드린 정서적 지지와 의학적 정보가 담긴 이 답변이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신 마음에 작은 위로와 희망의 빛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