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해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김해 30대 초반/여 우울증)
안녕하세요.
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취미 부자라고 불릴 정도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퇴근 후에는 운동도 하고 주말에는 동호회 활동도 하며 바쁘게 지내는 것이 삶의 낙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힘에 부칠 정도로 만사가 귀찮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체력이 떨어졌나 싶어 쉬어보려 했지만, 아무리 쉬어도 기운이 나질 않습니다.
좋아하던 취미 생활은커녕 씻고 밥을 챙겨 먹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거대한 과제처럼 느껴져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게 됩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고 있는데, 편안하게 쉬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자괴감만 들고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집니다.
몸이 무거워서 마음까지 가라앉는 건지, 마음이 병들어서 몸이 안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억지로라도 움직여보려 해도 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답답해서 눈물만 납니다. 예전의 활기찼던 제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변해버린 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한의원 치료가 도움이 될지 상담 부탁드립니다.
의사 답변 (1)
답변완료안녕하세요, 닥톡-네이버 지식iN 상담한의사 김한나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삶의 열정이 가득했던 분이기에, 현재 느끼시는 무기력감과 공허함이 더욱 크고 고통스럽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됩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조차 휴식이 아닌 부질없음으로 느껴진다는 말씀에서, 환자분이 겪고 계신 마음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절실히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환자분께서 호소하시는 증상들, 즉 흥미와 의욕의 상실, 극심한 피로감, 그리고 일상생활의 기능 저하와 허무함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슬럼프가 아닌 우울증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환자분의 정신력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뇌와 신체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 의지를 발휘할 연료가 바닥난 상태이므로 자책하기보다는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셔야 합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지만, 실제 환자분들이 겪는 고통은 감기 수준이 아닙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불균형이 생기면, 우리 뇌는 즐거움이나 성취감을 느끼는 회로가 차단되고, 대신 무기력과 우울감을 느끼는 회로가 활성화됩니다. 마치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처럼,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되고,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움직일 수 없는 신체화 증상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환자분처럼 활동적이던 분들이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진한 후 번아웃 증후군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동안 너무 치열하게 살아오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우울증의 원인을 기혈양허와 간기울결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기혈양허는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기운과 혈액이 모두 부족해진 상태입니다. 취미 부자라 불릴 만큼 에너지를 쏟아붓는 동안, 정작 내면의 곳간은 텅 비어버린 것입니다. 연료가 없으니 몸이 움직이지 않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간의 기운을 꽉 막아버리면(간기울결), 기운이 전신으로 순환되지 못하고 가슴 속에 맺혀 우울감을 심화시킵니다. 흐르지 않는 물이 고여서 썩듯이, 순환되지 않는 기운은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한의원에서의 치료는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고갈된 진액과 에너지를 채우고 막힌 기운을 뚫어주어 스스로 일어날 힘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치료의 핵심이 되는 한약은 환자분의 체질에 맞춰 처방됩니다. 먼저 귀비탕이나 보중익기탕 등의 처방을 사용하여 부족해진 심장의 혈과 비장의 기운을 충분히 보충해 줍니다. 몸에 에너지가 차오르면 축 처져있던 몸이 가벼워지고, 뇌로 가는 영양 공급이 원활해져 멍하던 머리가 맑아지며 조금씩 의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또한 시호, 향부자, 울금 등을 사용하여 가슴 속에 맺힌 울화와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주면, 막혔던 감정의 통로가 열리면서 답답함이 사라지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됩니다.
이와 함께 침 치료는 전신의 기혈 순환을 돕고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어 신체 컨디션을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은 혼자서 의지로 이겨내기 힘든 병이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반드시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한의학적인 도움을 통해 텅 빈 마음의 곳간을 채우신다면, 환자분은 다시 예전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즐기는 활기찬 모습을 되찾으실 수 있습니다. 용기 내어 치료를 시작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