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재미 없고 몸 이곳저곳이 아프시다는 부모님, 노인 우울증인가요? (구로 70대 후반/남 노인우울증)
최근 저희 아버님이 부쩍 말수가 줄어드시고 "다 살았다", "내일 눈 안 떴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입맛도 없으신지 식사도 거르시고,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고 하시는데 병원 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만 하네요.
단순히 연세가 드셔서 기운이 없으신 건지, 아니면 마음의 병인 건지 몰라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닥톡-네이버 지식iN 상담한의사 김가나입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버님의 약해진 모습과 가슴 아픈 말씀들을 들으며 자제분께서
얼마나 큰 슬픔과 걱정을 안고 계실지 그 마음이 충분히 느껴집니다.
노년기에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는 젊은 시절의 우울함과는
또 다른 깊은 고독과 허무를 동반하기에 부모님도,
지켜보는 가족도 참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아버님이 내뱉으시는 무거운 말씀들은 사실
"지금 내 마음이 너무 힘들고 외로우니 나를 조금만 더 살펴달라"는
간절한 신호임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노인 우울증은 일반적인 우울감보다 신체적인 통증이나
기억력 저하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가면 우울증' 혹은 '가성 치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기혈허약(氣血虛弱)'과 '심담허겁(心膽虛怯)'의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비유를 하자면, 아버님의 마음 상태는 '기름이 거의 바닥난 등불'과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기름이 풍족하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불꽃이 금방 다시 살아났지만, 노년기에 접어들며 신체적 기능이 떨어지고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마음을 밝히는 에너지인 기혈(氣血)이 급격히 소모된 상태입니다.
기름이 없으니 불꽃이 흔들리고, 작은 자극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불안해지는 '심담허겁'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또한 기운이 순환되지 못하고 한곳에 머물면 몸 곳곳에
원인 모를 통증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마음의 병이
몸의 언어로 표현되는 과정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세심한 진단과 도움을 받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노년기 한의학 치료의 핵심은 억지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해진 기혈을 보강하여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체력'을 길러주는 데 있습니다.
체질에 맞춘 한약은 비위 기능을 살려 영양 섭취를 돕고
심장의 기운을 안정시켜 숙면을 취하게 함으로써
전반적인 기력을 회복시키는 데 보탬이 됩니다.
또한 가벼운 침 치료와 온열 요법은 경직된 근육과
신경계를 이완시켜 어르신들이 호소하시는 신체 통증을 완화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아버님께 "기운 내세요"라는 격려도 좋지만,
그보다는 아버님이 살아오신 세월에 대한 인정과
감사를 자주 표현해주시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아버님이 계셔서 저희가 이만큼 살 수 있었어요"라는 한마디가
노년의 상실감을 채워주는 가장 귀한 약이 됩니다.
소화가 잘되는 따뜻한 음식을 챙겨드리고, 하루 20분 정도
가벼운 산책을 함께하며 바깥 공기를 쐬게 해드리는 것도 뇌 활력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노년은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라, 가장 평온하게 자신을 돌봐야 하는 시기입니다.
적절한 전문가의 보살핌과 가족의 따뜻한 지지가 더해진다면
아버님께서도 다시금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아버님의 얼굴에 다시 편안한 미소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이 답변이 가족분들께 작은 희망과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의 평안한 노후와 건강한 마음 회복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