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두렵고 살찔까 봐 무서운데 거식증일까요? (강남구 20대 후반/여 거식증)
요즘 살이 조금만 쪄도 불안하고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하루에 사과 반 쪽만 먹으며 버티다 보니 몸무게가 엄청 빠졌는데도 거울을 보면 여전히 뚱뚱해 보여서 먹을 수가 없어요. 저 거식증인가요?
안녕하세요, 닥톡-네이버 지식iN 상담한의사 유종호입니다.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그동안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밀려오는 극심한 불안감과,
음식 한 모금조차 마음 편히 삼키지 못했을 외롭고 고단한 시간들을 감히 헤아려보게 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미 너무나 마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조금이라도
늘어날까 봐 온 신경이 곤두서고, 음식을 마주하는 매 순간이 마치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처럼 두렵고 버겁게 느껴지셨을 것 같습니다.
마음껏 먹지 못하는 신체적인 굶주림보다 살이 찔지 모른다는 정서적인 공포감이 더 크게 지배하면서,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서 버텨내셨을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참 아픕니다.
지금 겪고 계신 이 고통은 단순히 예민한 성격 탓이거나 미용에 대한 과도한
욕심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며, 마음의 에너지가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보내는 간절한 신호이니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몰아세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이처럼 음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상태를 몸 안의 기운이 부드럽게 흐르지 못하고 가슴과
위장관에 단단히 뭉치게 되는 현상이나, 정서적인 안정을 관장하는
장부의 기혈이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로 설명하곤 합니다.
우리 몸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순환시키는 소화 체계를 마치 맑고 깨끗한 물이
고여 흘러가는 부드러운 물길에 비유한다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과도한 스트레스나 심리적 압박감은 이 물길을 꽉 막아버리는 커다란 흙더미와 같습니다.
기운이 제대로 돌지 못하고 위장 부위에 탁하게 정체되면 음식을 받아들이는 문이 닫히게 되는데,
이를 한의학에서는 기운이 뭉치는 '기울'이나 소화기의 기운이 상하는 '비위허약'의 상태로 봅니다.
이로 인해 음식을 생각만 해도 속이 더부룩하거나 거부감이 들고,
정서적인 불안감이 소화기 점막을 위축시켜 강박적으로 음식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장기간의 정서적 피로와 영양 부족이 겹치게 되면,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고
두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장부인 심장과 담도의 기능이 점차 소모되는 '심담구겁' 혹은
'기혈양구'의 상태가 깊어지기 쉽습니다. 마치 등잔불에 기름이 바짝 말라가듯
장부의 내적인 진액이 고갈되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방어벽이 얇아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체중이나
외모에 대한 사소한 자극에도 두뇌와 신경계가 과도하게 공포 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왜곡된
시선으로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즉, 거식의 경향성은 단순히 식욕의 문제가 아니라 몸속 깊은 곳에서
기혈의 소모와 정서적 불안이 얽혀 나타나는 전신적인 신체 및 마음의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 상태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위장관과 가슴속에 꽉 막혀 있는
기운의 매듭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오랜 굶주림과 소모로 인해 지치고
약해진 장부의 기혈을 차근차근 채워주는 정성스러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음식을 향한 거부감과 내면의 극심한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운의 순환을 바로잡고,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장부들을 보강하여
몸과 마음이 스스로 건강한 정서적 균형과 신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기 위한 작은 실천들이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음식을 한 번에 완벽하게 잘 먹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아주 작은 양이라도 소화가 잘되는 따뜻한 미음이나 부드러운
유동식 위주로 부담 없이 삼키는 연습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편안하고 조용한 환경을
조성해 주시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또한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가볍게 산책을 하며 따뜻한 햇볕을 죄는 것은
몸 안의 막힌 기운을 흩어버리고 자율신경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내 몸을 체중계의 숫자로만 평가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도 숨을 쉬며 버텨주고 있는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는 유연한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겨울이 깊고 외로울 때는 혼자서 모든 짐을 완벽하게 짊어지려 하기보다,
현재의 상태를 몸과 마음의 흐름이 잠시 흐트러진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주변에 조심스럽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현재 겪고 계신 거부감과 불안한 감정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며,
차근차근 내면의 균형을 바로잡아 나간다면 충분히 다시 차분하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눈부신 아침 해가 떠오르듯, 지금의 힘겨운
시간도 결국 지나가고 마음속에 다시 맑고 쾌적한 봄바람이
불어올 날이 머지않았음을 믿으셨으면 합니다.
늘 가정 내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고 치유해 나가는 그 외롭고
고단한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가슴속에 웅크려진 온기가
다시 환하게 피어나기를 멀리서나마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작성해 드린 답변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조그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