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거부하는 중학생 아이, 혹시 거식증인거 같아요. (창원 10대 초반/여 거식증)
안녕하세요. 중학교에 재학 중인 딸아이 때문에 매일 가슴이 타들어 가는 심정입니다.
우리 아이가 작년에 초6일때까지 또래보다 체격이 좋고 약간 통통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친구들에게 뚱뚱하다는 놀림을 받았는지 그때부터 밥을 줄이고 운동을 심하게 하더니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처음에는 살이 빠지고 예뻐진 모습을 보며 좋아했는데, 다이어트를 성공한 이후부터는 아예 먹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식사 시간이 되면 어떻게든 밥을 안 먹으려고 핑계를 대고, 제가 억지로 몇 숟가락이라도 먹이면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해버리기 일쑤입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앙상한 마른 몸을 추구하는 일명 뼈말라가 유행이라는데, 우리 아이도 거기에 휩쓸려 완전히 굶는 수준까지 간 것 같아요.
게다가 아이가 살이 너무 빠져서인지 초경 시작할때 됐는데 나타날 시기인데도 아직 시작하지 않아 덜컥 겁이 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 몸이 완전히 망가질 것 같은데 당장 밥을 먹일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에 가보려니 혹시나 진료 기록이 남아 나중에 아이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을까 싶고, 무엇보다 곧 사춘기가 될 아이가 거부감을 느낄까 봐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혹시 한의원에서도 정상적인 성장을 돕는 치료가 가능할까 싶어 여쭤봅니다.
안녕하세요, 닥톡-네이버 지식iN 상담한의사 김한나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이려 애쓰셨을 어머님의 그 절박하고 타들어 가는 심정에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또래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고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선택한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무척 안타깝습니다. 아이의 식사 거부가 단순한 반항을 넘어 구토로까지 이어지고 초경마저 지연되고 있으니 부모님으로서의 걱정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혼자서 끙끙 앓아오셨을 텐데, 한방 치료가 아이의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따뜻한 돌파구가 될 수 있으니 너무 절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머님께서 자세히 적어주신 아이의 증상들은 의학적으로 신경성 식욕부진증, 즉 거식증을 강력하게 의심하게 합니다. 거식증은 단순히 입맛이 없어서 밥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음식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굶주리게 만드는 심각한 식이장애입니다. 친구들의 놀림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와 마른 몸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뇌의 식욕 조절 중추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 자체를 극도의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게 되고 억지로 먹었을 때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구토를 하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특히 한창 자라나야 할 청소년기에 영양 공급이 극도로 제한되면 뇌하수체의 호르몬 분비 체계에 이상이 생겨 초경이 지연되거나 무월경이 나타나는 등 뼈와 신체 발달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거식증의 원인을 주로 심장과 비장의 기운이 함께 손상된 심비양허와, 억눌린 스트레스로 인해 기혈이 꽉 막혀버린 간기울결의 상태로 진단합니다. 마음의 상처와 강박관념이 심장의 기운을 억누르고 이로 인해 소화를 주관하는 비위의 기능마저 완전히 정지해버린 것입니다. 장부가 멈춰있으니 음식이 들어오면 몸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내려 구토를 일으킵니다. 또한 여성 호르몬을 생성하고 조절해야 할 몸속의 진액과 정혈이 완전히 고갈되어 우리 몸이 생존 모드에 돌입하면서 가장 먼저 생식 기능을 차단해버렸기 때문에 초경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몸의 엔진은 꺼져가고 마음은 극도의 불안감에 갇혀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방 치료는 아이에게 억지로 음식을 주입하거나 심리적으로 다그치는 방식이 아니라, 멈춰버린 장부의 기능을 부드럽게 깨우고 극도의 긴장 상태인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데 집중합니다. 아이의 체질에 맞춰 세심하게 처방되는 한약은 먼저 가슴속에 뭉친 화기를 내려주어 살찌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강박을 서서히 누그러뜨립니다. 또한 기능이 정지된 비위의 기운을 따뜻하게 북돋아 소화기의 연동 운동을 조심스럽게 회복시켜 줍니다. 몸속의 기혈이 다시 순환하고 진액이 채워지면 뇌 신경이 안정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며 식욕이 조금씩 살아나게 됩니다. 몸의 영양 상태가 개선되고 혈액이 충분히 생성되면 멈춰있던 여성 호르몬 분비도 정상화되어 건강한 2차 성징과 초경을 맞이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됩니다.
약물 치료와 함께 아이가 편안하게 받을 수 있는 부드러운 침 치료나 뜸 치료를 병행하면 소화기 주변의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고 전신의 기운을 소통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가정에서의 역할도 치료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식사 시간에 아이에게 먹을 것을 강요하거나 식사량을 지적하는 행위는 뇌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하므로 절대 피하셔야 합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편안하고 따뜻한 식탁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는 것이 우선입니다. 체중에 대한 언급을 멈추고 아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심어주셔야 아이의 마음이 열립니다. 거식증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독여야 극복할 수 있는 질환이니 조속히 내원하시어 아이에게 맞는 따뜻하고 체계적인 치료 계획을 세워보시길 권해드립니다.